[연극 리뷰] 세련미 입은 대신 입체감 잃은 '현대판 오셀로'

입력 2023-05-23 17:56   수정 2023-05-24 00:20

흑인 장군 오셀로는 검은 롱코트를, 간교한 부하 이아고는 가죽 재킷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중인 ‘오셀로’는 400여 년 전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눈으로만 봐서는 현대극과 차이가 없었다. 무대 디자인부터 의상까지, 한눈에 봐도 세련된 무대는 ‘고전은 고루할 것’이란 선입견을 없애줬다.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날 선 캐릭터여야 맛이 날 오셀로와 그의 아내를 너무 뭉툭하게 그린 것 아니냐는 의문은 극이 끝날 때까지도 풀리지 않았다.
‘21세기 오셀로’ 표현
‘오셀로’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심리 묘사가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무어인 용병 출신 오셀로 장군은 부하 이아고의 계략에 빠져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의 정절을 의심하고 질투에 사로잡힌다. 결국 오셀로는 아내를 살해하는데 뒤늦게 진실을 알고는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의처증이나 의부증을 ‘오셀로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술의전당 토월정통연극 시리즈로 기획된 이번 공연은 고전을 현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셰익스피어 희곡 특유의 문어체를 자연스러운 현대적 문체로 바꾸느라 애쓴 티가 역력하다. 지나치게 긴 호흡의 대사와 요즘 듣기에 어색한 단어들을 없앴다. 무대 디자인과 의상, 연출 등도 요즘 말로 ‘힙(hip)’하다. 그래서 보는 맛이 있다.

작품은 어둡고 축축한 지하 벙커 콘셉트의 무대에서 전개된다. 더러운 물이 여기저기 고여 있고,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무대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극 중 등장하는 악사들은 삼류 록밴드 모양새를 했다.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는 악인 이아고다. 이아고는 진급에서 ‘물을 먹고’ 질투심에 사로잡혀 오셀로에게 데스데모나와 카시오의 관계를 모함한다. 좋아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인물이지만, 관객들은 이아고의 넉살과 익살에 빠져든다. 손상규의 연기력 덕분이다. 관객들을 오셀로를 곤경에 빠뜨리는 계략의 ‘공모자’로 만들어버릴 정도다.

이아고의 부인이자 데스데모나의 시중을 드는 에밀리아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바지 정장을 입은 에밀리아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 데스데모나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울부짖고 죽음을 무릅쓴다. 소리꾼이자 작창가, 음악감독 등으로 활약하는 이자람이 에밀리아 역을 맡아 매력적인 연기를 펼쳤다.
데스데모나 연기 아쉬워
정작 아쉬운 것은 주인공들의 입체감이다. 양대 축인 오셀로(박호산·유태웅 분)와 데스데모나(이설 분)를 너무 평면적으로 그렸다. 주연보다 조연(이아고와 에밀리아 부부)의 ‘존재감’이 더 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셀로는 바보가 아니다. 능력 있고 신망받는 장군이다. 그런 오셀로가 내면에 감춰진 열등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아고의 계략에 빠지는 것이 극의 핵심인데, 이 모든 걸 뭉뚱그려 오셀로의 아둔함 탓으로 돌렸다. 오셀로가 심각한 대사를 할 때 객석에서 종종 웃음이 터져 나온 이유도, 따지고 보면 오셀로의 고뇌가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데스데모나를 ‘온실에서 곱게 자란 귀족 아가씨’ 정도로 표현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시대의 편견과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이 많은 흑인 장군과 결혼을 결심할 정도로 자기 주관이 확실한 데스데모나의 모습이 이번 작품에선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은 무대 구조가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 있는 CJ토월극장의 특성을 활용해 배우들의 동선이 무대 안쪽까지 뻗어 있다. 일각에선 배우들이 관객과 지나치게 멀리 떨어진 탓에 앞줄에 앉아도 표정을 보기 힘들다는 불평이 나온다. 공연은 6월 4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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